2019.11.24
1. 입방 시간에 쫓기며 무거운 짐을 어깨로 메고 걸어가면서 나는 나를 짓누르는 또 한 덩어리의 육중한 생각을 짐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. 내일은 '머ㅡㄴ길'을 떠날 터이니 옷 한 벌과 지팡이를 채비해두도록 동자더러 이른 어느 노승이 이튿날 새벽 지팡이 하나 사립 앞에 짚고 풀발 선 옷자락으로 꼿꼿이 선 채 숨을 거두었더라는 그 고결한 임종의 자태가 줄곧 나를 책망하였습니다.
섭갹담등, 즐풍목우. 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로 바람결에 머리 빗고 빗물로 머리 감던 옛사람들의 미련 없는 속탈은 감히 시늉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10여 년 징역을 살고도 아직 빈 몸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.
있으면 없는 것보다 편리한 것도 사실이지만 완물상지, 가지면 가진 것에 뜻을 앗기며, 물건은 방만 차지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자리를 틀고 앉아 창의를 잠식하기도 합니다.
- 감옥으로부터의 사색, 신영복
2. 한 해를 돌아보는 몇 가지 성찰
우리시대의 양심가인 신영복 선생은 수인 시절에 보냈던 엽서를 모은 ‘감옥으로부터의 사색’에서 “한 해의 마지막 즈음이 되면 사고(思考)의 서랍을 엎어 쏟아내면서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과 어설픈 관념의 야적을 과감히 버리고 섭갹담등(躡屩擔簦-집신 한 켤레와 우산 한 자루)으로 언제 어디로든 가뜬히 떠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지품만 남기고는 정리하였다”고 했다. 이는 어느 노스님이 시자에게 “내일 길을 떠날 테니 깨끗하게 빤 옷 한 벌과 지팡이 하나를 준비하라”고 말씀 하시곤, 다음날 그렇게 준비된 옷과 신발로 행장을 꾸리고 문 밖을 나서 지팡이를 짚고 길 떠나는 자세로 입적했다는 일화를 되새기면서 본받고자 했던 것이다.법정 스님은 겨울을 ‘뿌리로 돌아가는 계절’로 ‘우리 안에 무언가 죽어야 할 것을 예감하는’ 계절이라고 했다.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면서 넘치도록 가진 물질뿐만 아니라, 탐욕과 성냄, 어리석음에 기대어 쌓아두었던 묵은 감정들과 온갖 상념들을 정리하고 내려놓아야 맑고 명징한 지혜의 등불이 켜지지 않을까
재마 스님 중앙승가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jeama3@naver.com
출처 : 법보신문(http://www.beopbo.com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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